-미끄러지고 엎어지고 (포천 관음산)
* 2010.07.11 / 파주골순두부집(08:40)-암릉-관음산-관음골재-관음골-파주골-할머니순두부집(12:00)
장맛비 예보에 산행지가 변경됐다.영주 선달산에서 포천 관음산으로.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이 우두두둑 화음을 내기 시작한다. 산 능선을 타자 비옷을 입는 산객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띈다. 경험칙상 비옷을 입어도 비가 많이 올 때는 땀과 비로 젖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비옷을 준비는 해 다니지만 나는 자주 입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입어도 젖고 입지 않아도 젖을바에야 비에 젖고 싶다.동식물중에서 비올 때 오직 인간만이 우산과 우비를 입지 않는가.멧돼지가 우산을 쓰던가.솔나리가 비를 피해 꽃수술대를 아래로 고개숙인 모습에서 자연의 지혜를 본다.
지방산을 다니면서 멧돼지똥을 오늘처럼 많이 본 적은 없다.숲 길 군데군데 파 헤쳐지고 그 속엔 어김없이 배설물이 쌓여있다.아마 포천 산들이 멧돼지가 서식하기에 좋은 곳인가보다.지금은 멧돼지의 천적도 사라진터라 그 개체수가 많이 불어났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오늘 오르는 관음산은 주변산에 비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그런탓에 등로는 수풀로 우거져 반듯하지 않다. 표지기도 거의 없고 정상 안내석도 없다.분명 인터넷상에서 나무로 된 정상목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정상목이 꽁꽁 숨어버렸다.
파주골로 내리는데 망초밭이 펼쳐진다. 유난히 망초 키가 크다. 떼로 어우러진 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발길을 잡는다. 우리 산야에서 가장 흔하게 여기저기 피어있는 그 꽃이 이렇게 무리지어 군락을 이루니 볼만하다. 급경사면도 아닌 내림길에서 그것도 세번이나 미끄러져 엎어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오직하면 뒤 따라오던 아내가 '참으로 이상하다'고 독백했겠는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는 내가 오늘은 세번이나 아내 앞에서 미끄러지고 엎어졌다. 엉덩방아 찧지않고 순간적으로 벌떡 일어나는 나에게 아내는 말했다. "운동신경 하나는 좋다"고. 우째 듣기가 민망하던지 그저 묵묵무답으로 길을 걸었다.
'숲 속의 단상(斷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남양주 예봉산) (0) | 2010.08.08 |
---|---|
-잔치국수 먹을 때마다 왜...(하남 검단산) (0) | 2010.07.26 |
-소박한 촌스러움의 극치를 만나러 (서산 일락산-예산 가야산) (0) | 2010.07.04 |
-3S맛, 한강기맥 길 (홍천 갈기산) (0) | 2010.06.29 |
-손주자랑 하지 마세욧 (화천 반암산) (0) | 2010.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