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필(落筆)

-관재(觀齋)라는 집의 기문(起文) / 연암의 세상 엿보기

천지현황1 2011. 3. 10. 17:54

-관재(觀齋)라는 집의 기문(起文) / 연암의 세상 엿보기

 

<관재라는 집의 기문>은 연암이 백오 서상우가 자기집의 이름을 관재라 짓고 연암에게 글을 부탁해 응해 쓴 글이다.연암이 1765년 가을 금강산 마하암에 준대사를 만나러 갔다가 대사와 동자승의 대화를 듣고 쓴 멍때리는 글이다.

 

 내용인즉슨 대사가 참선중인데,동자승이 향을 피우다 오도송(悟道頌)을 읊는다.

 

                                    .공덕이 가득하니                                 功德旣滿

                                    .움직임이 바람으로 돌아가리라              動轉歸風

                                    .내가 깨달았으니                                 成我浮圖

                                    .한 톨의 향에서 무지개가 일도다            一粒起虹

 

 그러자 대사가 동자승에게 말한다."얘야,넌 향기를 맡는구나.나는 타고난 재를 보는데.넌 연기를 기뻐하는구나.난 공(空)을 보는데.움직임도 이미 공적(空寂)하거늘.공덕을 어디다 베푼단 말이냐."

 

 이어 대사는 말한다. "너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순순히 보내라.내가 60년동안 세상을 보니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넘실넘실 흐르는 강물처럼 도도하게 흘러가나니.해와 달이 가고 또 가서 잠시도 그 바퀴를 멈추지 않거늘 내일의 해는 오늘의 해가 아니란다.그러므로 미리 맞이하는 것은 거스리는 것이요,좇아가 붙잡는 것은 억지로 힘 쓰는 것이요,보내는 것은 순순히 따르는 것이다.네 마음을 머물러 두지 말며,네 기운을 막아 두지 말지니,명을 순순히 따르며 명을 통해 자신을 보아 이치에 따라 보내고 이치로써 대상을 보라.그러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물이 흐르고 거기 흰 구름이 피어나리라."

 

 옆에서 이 대화를 들은 연암의 반응이 흥미롭다."나는 턱을 괴고 대사곁에 앉아 이 말을 들었는데 참으로 정신이 멍하였다."

나도 이 글을 읽고 한참을 멍때렸다.동자승의 연기,바람,무지개는 불가에서 허망함을 비유한다지만 그도 역시 사물을 꿰뚫어 본게 아닌가.

 

*이 글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신광현 교수가 <덧없음에 덧칠하기>란 소제목으로 <스무살,인문학을 만나다>의 공저자로 쓴 글로서, 박희병의 <연암을 읽는다>의 <관재라는 집의 기문>에서 재 인용한 글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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