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목,연리지,연리근 (경희궁)
* 2011.06.11 촬영 / 경희궁 내 소재 느티나무
하늘에는 비익조 / 땅에는 연리지
비익조(比翼鳥)암컷과 수컷이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새로서,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두터움을 이르는 말로 쓰입니다.마찬가지로 나무가지가 이어져 사는 나무를 연리지(連理枝),나무줄기가 이어져 사는 나무를 연리목(連理木),서로 다른 나무뿌리가 결합된 나무를 연리근(連理根)이라 하지요.서로 가까이 살던 유전자가 같은 두 나무가 한나무가 되는게 연리목이지요.연리목이 가능한건 나무는 물과 영양분을 나선형으로 공급하기 때문입니다.부부애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연리지사랑 또는 연리목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경쟁과 승패를 강제하지 않는 나무의 삶,참으로 아름다운 미덕입니다.
윗그림은 경희궁 내에 있는 연리목 사진이예요.두번째 그림 역시 경희궁 내에 있는 나무로 연리목,연리지,연리근 셋을 다 나타내는 나무입니,참으로 희귀한 느티나무라 할 수 있지요.참고로 위 연리목의 나이테는 짤라보지는 않았지만 이론상 아래 그림과 같을 것입니다.
경희궁
사적 271호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1617년(광해군 9) 인경궁(仁慶宮)·자수궁(慈壽宮)과 함께 건축을 시작하여 1620년 10월에 완공하였다. 처음에는 경덕궁(慶德宮)이라 하였으나,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고쳤다. 경희궁 자리는 원래 인조(仁祖)의 생부인 정원군(定遠君:뒤에 元宗으로 추존)의 잠저(潛邸)였는데, 여기에 왕기(王氣)가 서렸다고 하여 광해군(光海君)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숭정전(崇政殿)·융복전(隆福殿)·집경당(集慶堂)·흥정당(興政堂)·회상전(會祥殿)·흥화문(與化門) 등의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1829년(순조 29) 화재로 대부분이 소실(燒失)되었으나, 1831년에 중건하였다. 그후 국권피탈 때에는 숭정전·회상전·흥정당·흥화문·황학정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숭정전은 1926년 동국대학교 구내로 이전되고, 2년 후에 흥정당은 광운사(光雲寺)로 이건하였으며, 흥화문은 1832년에 박문사(博文寺)의 산문(山門)으로 이축되었다가 장충동 영빈관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황학정은 1922년 사직단(社稷壇) 뒤 등과정(登科亭) 터로 이건하였다.
1988년 경희궁 복원작업에 착수하여 흥화문은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이건하고, 숭정전은 새 건물을 지어 복원하였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
(잣나무 연리지 / 검단산,2011.07.06)
팔당둔치 120409
괴산 사랑산 131027
(한 ㅇ ㅇ 님 사진제공)
연리근
두위봉 131020 / 서로 종이 다른 삼남매 연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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