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은 운무속에 꽁꽁 숨고 / 한라산
* 2014.10.06 / 관음사탐방소(07:15)-삼각봉대피소-백록담(10:45 ~11:40))-관음사탐방소(15:10)...17.4km / 8시간
이틀간 관광모드를 해제한다.한라산이 손짓하는 듯 해 다시 백록담을 오른다.제주에 한 달 지내면서 알았다.기상청 예보와는 달리 한라산의 일기는 변화무쌍하다.햇볕이 쨍하다는 예보와는 달리 숲정이에서부터 하늘은 어둡다.물론 빽빽한 숲이기때문에 그러려니 했으나,초입을 지나면서부터도 운무 속의 숲길을 걸어야 했다.제주조릿대 댓잎에 간혹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또한 정겹게 들린다.한라산을 이번 여행길에서 여섯번째 오르지만 오늘처럼 세찬 운무는 처음이다.정상까지 내내 지속되었다.삼각봉대피소에서 잠깐 쉬었을 뿐 쉼도 없이 올라왔더니 세시간 반만에 백록담에 도착한다.운무에 실려오는 강풍에 아내가 멀리 날라갈 뻔 했다.다행히 몸무게가 많이 나가 그녀는 날라가지 않고 크게 휘청거렸을 뿐이다.
많은 산객들이 추위에 떨며 백록담을 보려고 그 강풍 속에 암반 밑 나무데크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한줄기 햇볕이 구름사이를 뚫고 잠깐 나오자 위에 홀로 서 있던 아내가 소리쳤다."백록담이 보여요".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난간 위로 뛰어 올랐을 때는 백록담에 담긴 물이 반 쯤 운무 속에서 보이다가 다시 꽁꽁 숨는다.고구마로 잠시 허기진 배를 달랜다.한 시간 동안 백록담을 보려고 기다렸던 사람도 그 순간을 보지 못하고 이내 자리를 뜬다.원주에서 왔다는 여학생도,제주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던 중 휴가받아 올라왔다던 공군 장병도 백록담을 보지 못해 안달한다.내가 우스개소리로 말했다."젊은이들,한라산에 처음 올라왔지요.그러니까 처음 올라 온 사람에게는 백록담이 얼굴을 안보여줘요.다음에 또 올라오라고".
아내가 산을 오르며,"보여주소서,보여주소서"하며 장난삼아 큰 소리로 주문을 거는 듯한 기도를 여러차례 하며 산을 올라왔다.아마 그 기도가 통한 모양이다.그녀만이 순간적으로 백록담을 보았기 때문이다.나는 순간적으로 반쯤 밖에 보지 못했다.간절히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언제 또 백록담에 올 수 있을지 후일을 기약하며 산을 내린다.날머리에 거의 다 내려와서야 정상적인 화창한 날씨를 만날 수 있었다.조릿대숲 속에서 섬사철란과 털사철란 몇 개체를 만났다.일주일 전에 만났던 수정란풀은 벌써 사그라지고 흔적만 만났다.이제 곧 이 섬을 떠나면 이 산길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한라산 백록담
하산길 삼각봉대피소
한라산의 식물
눈향나무인지 섬향나무인지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다 (한라산 1850고지)
한라산 정상에 사는 좀양지꽃
섬사철란
털사철란
수정란풀
좀민들레
딱취
'제주 한 달 방랑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쪽빛바다와 어우러진 파도의 걸작품 / 용머리해안 (0) | 2014.10.08 |
---|---|
풍랑으로 4일만에 탐방한 섬 / 추자도 올레18-1 (0) | 2014.10.08 |
관광모드 2 / 제주동남권 (0) | 2014.10.05 |
관광모드로 전환하다 / 제주서부권 (0) | 2014.10.04 |
쇼쇼쇼,운무와 바람이 만든 천변만화 / 한라산 - 영실코스 (0) | 2014.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