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 금강송숲을 할퀴던 날 240315
여행 이틀 째의 날,새벽 온천탕은 만원이다.백암온천장을 수십 차례 드나들었지만 오늘처럼 온천탕에 많은 인원으로 북적대는 경우는 드물다.여탕도 마찬가진가 보다.아내도 똑같은 말을 한다.온천후 숙소에 들어서니 숙소 뒷산,백암산 언저리에 강한 바람이 불어제낀다.창문을 조금 여니 바람소리가 맹렬하다.호랑이 울음소리같다.어제 대구 팔공산 산행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아 오늘은 가볍게 숙소에서 멀지않은 영양의 검마산으로 정하고 오전엔 숙소에서 뒹군다.바람은 세차게 불어제끼며 금강송숲을 희롱한다.숲 속 저편에선 까마귀 여러 마리가 바람을 달래보지만 소용없다.
이른 점심을 들고 검마산휴양림으로 향한다.백암온천에서 영양으로 가는 88번 국도는 구절양장길이다.굽이굽이 휘돌아치는 길은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아 길이 어지럽다.폭설과 강풍에 여기저기 금강송들이 많이 꺾여 길가에 너브러져 있다.자연도 인자하지 않음을 목격한다.
구주령 굽이길을 돌아 영양 검마산휴양림에 도착한다.산행채비를 하고 막 산행을 시작할 찰라 휴양림 관리인이 나타나 산행을 제지한다.폭설과 강풍으로 소나무 가지들이 많이 꺾여 입산을 통재한단다.휴양림 산책로라도 조금 걷고 싶다고 해도 안된다고 막무가내다.실은 관리인이 막무가내가 아니고 내쪽이 막무가내로 사정한다.차를 돌려 구주령 구절양장길을 다시 넘는다.온천장 커피숍에 앉아 냉커피 한 잔으로 우울한 마음을 달랜다.
해풍이 금강송숲을 할퀴던 날,구주령 구절양장길을 넘나들었더니 멀미가 심해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워버렸다.지금 이 순간에도 멀미가 가라않질 않는다.마음만이라도 낡고싶지 않다.자꾸 육신과 마음이 함께 이렇게 속절없이 낡아가는가.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축복받은 자들이 산다는 낙원의 섬,'헤스페리데스섬'에서 생산된다는 황금사과를 사먹어볼꺼나.요즘은 우리나라도 그 섬처럼 낙원이 되었다.사과 한 톨에 10,000원 안팍의 금사과가 팔리니.과연 에덴동산의 금단의 과일이 사과였을까.불로장생은 나 같이 아둔한자의 허망한 꿈일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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