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바람따라

-장회나루에 추억을 묻고

천지현황1 2005. 7. 27. 16:47
  -장회나루에 추억을 묻고
 

*이 사진은 2005.02.12 제비봉 산행시 촬영
 

장회나루를 출발한 유람선은 물살을 가르며 제비봉을 돌아 막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유람선 선장이 마이크를 잡고 관광 안내방송을 시작하면서 관광객들에게 팝콘 캔을 들어 보이며 한 개씩 나눠주겠단다. 동시에 선실 안엔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잠시 후 마이크에선 “대신 배달료는 2,000원  받습니다”라는 말이 터져 나오자 “우--”하고 웃음  바다가 되었다. 충주호 유람선 관광은 이렇게 선장의 걸죽한 입담과 함께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와 나는 주말에 동해바다를 다녀올까, 서해바다에서 낙조를 볼까 하고 의논하다가 충주댐 장회나루에서 유람선 관광으로 결정이 났다. 내 무릎 연골이 아직 낫지 않아 산행은 무리여서 강원도를 여행하며 드라이브 길로 많이 이용했던 충주 호반 길을 택한 것이다.


충주호에 충주나루, 월악나루, 장회나루 그리고 청풍나루 등 네 개의 나루터가 있다. 그 중에서 장회나루를 선택하여 유람선을 탔다. 단풍철이라 아침 일찍 서둘렀는데도 나루에 도착해보니 벌써 여러 대의 대형 관광버스가 주차장에 도착하여 관광객을 토해 내고 있었다. 월악 계곡으로 막 접어들기 전까지 안개에 가려 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송계 계곡에 막 접어드니 월악산 영봉부터 내려온 단풍이 불타고 있다.


이 호반 길은 나에겐 익숙한 길이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 그러니까 남한강이 수몰되기 바로 두 해 전 탐석 (수석)에 한 2년간 몰두한 적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휴일이면 수석 동호인들과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수석 산지인 이곳 남한강 돌밭을 샅샅이 뒤졌다.  목계, 학수머리, 월악, 덕산, 수산, 청풍, 단양, 괴산 멀리는 문경, 점촌, 영순 까지 돌밭을 돌며 수많은 돌들과 대화를 나눴다. 명석 한 점 얻기 위하여, 소유의 집착이 많았던 젊은 날 그리 많이 다니던 돌밭이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돌밭이 물에 잠기었다. 나는 지금 유람선을 타고 60m-100m 강물 속에서 20년 전의 그 돌밭을 찾고 있는 중이다.


갑자기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천 원 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하고 유람선 관광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때 갑판에 나와 아내와 함께 투구모양을 한 봉우리 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름하여 신선봉이다. 투구같이 생겼다하여 투구봉이라고도 한다나. 선실 안쪽에서 어느 젊은 여자 관광객이 “이율곡이요” 하고 대답하나 보다. 선장은 “이율곡 선생이 아니고, 퇴계 이황 선생의 초상홥니다” 하고 정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어서 설명이 이어지는데 퇴계 선생이 10개월 정도 단양 군수로 역임하신 적이 있었단다. 그러면서 눈을 들어보란다. 신선봉 아래 나지막한 물가에 묘 하나가 보이냐고 하기에 일제히 묘하나 찾기에 열중이다. 묘 하나가 물 수면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제비봉을 올려다보며 덩그렇게 누워 있었다. 선장의 설명이 이어진다. 그 묘 주인은 ‘안두향’이라는 기생의 묘인데, 그녀는 10개월간 단양군수를 지낸 퇴계 이황을 밤에는 모시지 않고 낮에만 모셨다고 익살을 섞는다. 지금도 퇴계 선생을 존경하는 후학들이 5월엔 어김없이 찾아와 ‘두향제’를 지낸다고 덧붙인다.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바라보이는 신선이 내려 왔다는 강선대는 층층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다. 산수화, 진경산수화, 그림으로 보던 이조시대의 겸재 정선의 산수화들이 머릿속에 겹쳐져 아롱져 온다. 단양 8경중 하나인 구담봉엔 송이버섯 바위, 거북바위 등을 품고 있는데 보이느냐고 선장이 묻는다. 기기묘묘한 자태의 바위들이 함성을 내 지르고 서 있다. 옥순봉에도 단풍은  기도바위와 두꺼비바위를 품에 안은 채 불타고 있다. 가까이 450m 길이의 옥순대교 조형물이 진경산수화에 먹물 한 점을 떨어뜨렸구나. 청풍과 제천을 잇는 인간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만든 다리 하나가 어쩐지 자연 경관을 해친 것 같다.


저수용량 27억 5천만 평방미터의 충주호는 우리에게 용수와 전력을 주고 관광 자원까지 선사하는구나. 물 속 깊이 박힌 수석 한 점은 수마되길 거부하며 천년을 잠자려나.  월악 선착장에서 출발한 유람선 한 척이 멀리서 다가오더니 쾌속으로 미끄러져 와 작은 물보라를 밀어내며 우리 배를 앞지른다. 타고 있던 이방인들이 이쪽을 향하여 일제히 손을 흔들어대니 이쪽 사람들도 그네들에게 손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500년 전에 퇴계 이황 선생의 수발을 들던 기생 안두향을 생각하느라고 누가 먼저 손을 흔들어댔는지 나는 모른다.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