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염초봉은 난공불락인가 (삼각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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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5.14 (토) / K형과 둘이서
*효자리 부대앞(09:30)- ? 능선-원효봉-북문-염초1봉 직벽 우회- 약수 리지 능선 (알바)-여우굴-백운대-백운암문-북한리-산성매표소(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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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가까운 남한산을 갔었으나 왠지 허전한 마음이다. 싱그러운 신록의 향연은 어느 산이나 벌어지겠지만 그래도 삼각산의 신록이 가슴 속을 더 시원하게 할 것 같던 차에 며칠 전에 <한국의 산하>에 ‘극공명’님이 올린 운무에 쌓인 삼각산의 사진 한 장이 주말을 더 기다리게 한다. 삼각산 향로봉 자락 산기슭에 사는 K형을 구파발역에서 만나 밤골 계곡을 경유해서 염초봉을 오르자고 해 놓고 효자리가 들머리인줄 알고 들어서니 그곳은 원효암, 원효봉 가는 길이란다. 가던 길을 되 집어 송추 방향 도로를 걸어 부대 앞을 지나니 우측으로 산길이 나타난다. 이 길도 아닌 듯한데 그냥 오늘의 들머리로 삼기로 하고 들어선다.
너덜 길을 조금 오르니 오솔길이 나타나며 연초록과 진초록의 신록이 빚은 산자락이 싱그럽기만 하다. 어느새 나무 잎이 크게 자라 하늘의 햇빛을 가려준다. 조용한 숲 속 길엔 가끔씩 나는 새소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계곡 물소리 그리고 우리 둘의 발자국 소리만 들릴 뿐 한적한 길이다.
삼각산에 오를 때마다 염초봉의 위용에 눌려 염초봉은 나에게 그림의 떡일 뿐 아예 오를 생각을 포기했으나 오늘은 생각이 다르다. 염초봉 밑자락에서 실컷 구경이나 하고 싶은 생각이 오솔길을 오르며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는 능선길에서 바라본 염초봉의 모습은 의상능선에서 바라본 염초봉과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한참을 오르니 우측으로 원효봉 능선과 만난다. 원효봉 정상엔 벌써 북한리 방향에서 올라온 산객들로 만원이다. 원효봉에서 바라보는 염초봉, 백운대와 만경봉 그리고 노적봉의 어우러진 모습은 의상능선에서 바라보는 삼각산의 여러 모습과 함께 제일 빼어난 산 그림일 듯하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한 무리의 산객들이 북문을 들어서더니 냉큼 둘러 쳐진 밧줄 펜스를 넘고 철조망까지 넘어 유유자적하게 길을 들어서지 않는가. 위험 구간이라는 것은 익히 아는 터이고 입산통제 과태료는 물 생각으로 우리도 뒤를 따른다. 처음엔 작은 암벽구간은 오르는데 어렵지 않게 진행된다.
잠깐 숨을 돌리는 사이에 앞선 산객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는 염초1봉 직벽을 만난다. 염초1봉의 모습을 이모저모 뜯어봐도 내 실력으론 장비도 없이 오르기는 어림도 없다. 절벽 길 바위에 앉아 앞 능선을 바라보며 진초록 산 그림에 취해 있는데 젊은 산객 부부가 올라오더니 그 직벽을 타기 시작한다. 넋을 놓고 구경꾼이 되고 만다. 배낭 속 디카를 꺼내 허락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아~ 나도 언젠가는 타고 싶다. “꼭 타고 말테다” 하고 나도 모르게 독백한다. 직벽을 우회하며 그 부부산객이 얼마나 부러운지 그 모습이 오래토록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계곡 길 너럭바위에서 K형과 함께 컵라면과 막걸리로 시장기를 때운다. 염초봉 직벽 아래에 서 보았으니 입문은 이미 한 셈이니 염초봉의 정기나 좀 받아볼 요량으로 한 시간여쯤 쉬었다.
우회하다 보니 내 실력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염초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능선이 나타난다. K형과 함께 한번 릿지를 해보자고 하며 도전을 한다. 조심조심 암벽을 끙끙대며 30여분 걸려 올랐으나 위험구간이 앞길을 막는다.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렵다. 올라 온 암릉 길을 내려 갈 것을 생각하니 걱정도 된다. 절벽 상단에 걸터앉아 한 숨만 쉬어 대는데 만경봉 상공에 헬기가 뜬다. 아마 사고인 듯싶다. 산행 시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산행인데 우리도 그걸 간과하고 장비 없이 우리 실력으론 무모하게 덤벼댔으니, 아직도 젊은 피가 혈관에 흐르고 있는가!
내려오려는데 저 아래에서 네 분의 산님이 릿지로 오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여성 산님도 한분 끼었다. 내려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인사를 나누고 초보도 이 길을 오를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해보나 장비도 없이 불가능하다. 리더 한 분은 경험이 많고 나머지 세분은 초행 같았다. 리더의 안내로 산님들이 어렵게 자일을 이용하여 오른다.
우리도 어렵게 암벽과 나뭇가지에 살갗을 긁혀가며 올라왔던 길을 내려와 여우굴로 향한다. 얼마쯤 올라가니 3m 정도의 직벽에 로프가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몇 분의 부부 산님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 분들은 하산 중이었다. 몸이 가벼운 내가 먼저 로프에 몸을 싣는다. 직벽에 로프 위치도 좋지 않아 오르기가 쉽지 않다. 겨우 올랐다. 그런데 K형이 걱정이다. 다른 한 여성분이 도전해 보지만 K형도 어려운데 여성분은 더 어렵다.
내려가는 산객들과 올라오는 산객들이 한참을 서 있는데 어느 산객 한 분이 내려오며 “로프 타지 말고 여우굴로 내려가세요.”한다. “여우굴이 어디 있는데요?” 하고 묻는다. “바로 등 뒤에 있잖아요.”. 아 말로만 듣던 여우굴이 바로 이 굴이었나? 나만 로프를 타고 올라온 탓에 ‘여우굴 체험’을 못했다.
여우굴을 벗어나자 고생했다고 금낭화가 반갑게 맞이한다. 쇠줄 난간을 오르니 바로 백운봉 정상에 닿는다. 인수봉엔 암벽 클라이머들이 여러 명 매달려 있다. 오늘은 난공불락일 것만 같은 염초봉을 공격(?)해 볼 생각을 처음으로 가진 날로 기억될 듯 하다. 북한리에 들러 두부김치에 막걸리로 하산주를 들며 얘기꽃을 피우다보니 삼각산도 옆자리에 동석하여 싱그럽게 웃고 있다. (200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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