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역에서 갈아탄 경원선은 북으로 내달린다. 차창가엔 양주 불곡산이 우뚝 보이더니 이내 사라지고 주내, 덕정을 지나며 아파트 숲을 만난다. 20여년전 필자가 아내 직장따라 동두천에 1년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던 그 시절이 타임머신을 타고 잠깐 추억의 길로 회상한다. 추억의 상념도 잠시 열차는 동두천 초입 신시가지인 지행역에 정차한다. 주말마다 만나도 언제나 반가운 산하 동두천 윤님부부가 우릴 반갑게 맞이해준다. 헤어지면 보고싶고, 또 만나면 즐겁다.
삼복더위지만 동두천을 지나 포천과 철원의 경계선 국도를 달리며 달변으로 풀어놓는 윤님의 지역 산사랑 해설을 들으며 어느덧 산정호수 주차장에 들어선다. 오늘 산행대장인 윤대장은 자인사 입구를 들머리로 해서 삼각봉을지나 정상을 찍고, 팔각정 안부에서 억새밭을 지나 등룡폭포로 내려서는 코스로 5시간을 예정한다며 출발한다.
# 자인사 입구를 들머리로
자인사 부도와 경내를 잠깐 둘러보고 우측 소로 계곡 너덜길을 오른다. 무더위로 흐르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 와중에도 정작가님은 버섯과 들꽃 접사에 여념이 없다. 며칠 전 산하에 사진작가로 데뷔한 정작가의 사모님 훈수가 가끔씩 눈에 띈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윤대장 사모님의 산행실력은 남편 못지 않다. 힘드는 오름길도 평지 걷듯 사뿐사뿐 즈려밟는 걸음 따르기가 초보 산꾼들에겐 힘겹다. 그래도 어쩌랴. 열심히 따르는 수 밖에...
# 책바위 안부길에서
너덜지대 급경사 구간을 올라서면 책바위 안부에 닿는다. 일행은 책바위 능선 길을 잠시 다녀온다. 오늘은 스모그가 잔뜩 끼어 조망은 그리 좋지 않다. 그러나 구름이 산허리를 감돌고 걸죽한 입담으로 좌중을 사로잡으며 길을 오르는 윤대장이 있으니 산행길이 지루하지가 않다. 게다가 결정적일때 툭 한마디 던지는 정작가 사모님의 재치어린 유머가 산행 피로를 가시게 하는 양념 역할을 한다. 그래도 흐르는 땀은 등줄기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 바지 가랭이까지 적셔 놓는다.
책바위 능선 쉼터에서 산정호수를 바라보는 다정한 윤대장 부부
# 드디어 팔각정에서 억새밭을 내려보며
고개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기를 몇차례, 드디어 팔각정 쉼터에서 억새밭을 내려다 보며 먹자전을 편다. 누가 시장이 반찬이라고 했던가. 언제나 산행 즐거움중에 으뜸은 산상 부폐가 아닌가 싶다. 멀리 천둥치는 소리를 들으며 캔 맥주와 오가피주 반주가 곁들인 산상만찬은 산행 동행인들의 마음씨 만큼이나 넉넉하다. 오늘따라 정작가 사모님의 시금털털한 묵은 김치맛도, 윤대장 사모님의 고향 김치맛도 감칠맛이 난다. 그래서 반주가 모자라나? 명성산 산허리를 오르던 구름과 바람도 쉬어가며 우리 자리에 동석하며 입맛을 다신다.
# 명성산엔 정상석이 두곳에
먹자전을 접고 팔각정을 내려서니 멀리 경비초소가 보이고, 팔각정 가까이 정상석이 하나 동그마니 서 있다. 윤대장 설명으론 평일 날엔 군 부대 사격장에서 사격하느라고 정상 가는 길을 통제하기 때문에 이 곳까지만 산행이 가능하단다. 그래서 이곳에 정상 아닌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는 설명이다. 오늘은 주말이라 우리는 명성산 진짜 정상을 향하여 발길을 뗀다.
# 지천으로 억새밭이 평원을 이루고 / 원추리가 새색시처럼 얼굴을 내밀고
10월이면 억세축제가 열리는 이곳 명성산 억새는 지금 지천으로 억새밭을 일구며 자라고 있다. 억새평원이 펼쳐지며 그 속엔 원추리가 그 옛날 새색시 시집갈 때 쪽두리 쓰고 연지곤지 바르고 얼굴을 가마에서 빼꼼하게 내밀듯 길손을 훔쳐보고 있다. 일행들은 한 컷 잡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정상가는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 드디어 명성산 정상에
능선길을 내주며 걷던 일행들은 삼각봉에 당도한다. 이정목엔 정상 2.7km, 하산 길의 등룡폭포까지도 2.7km의 안내목이 산행인들의 거센 숨소리를 몰아댄다. 해발 923m의 정상을 호락호락 내주지 않겠다는 심사다. 그러나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몇 차례 하고나니 드디어 정상에 섰다. 정상에서 시원한 냉커피와 캔 맥주로 정상주를 대신하고 팔각정 쉼터까지 원점회귀한다. 신안고개 방향으로 내려가면 명성산을 일주하는 셈이 되지만, 우린 등룡폭포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다시 삼각봉으로 내린다.
# 윤대장은 경기북부 산의 홍보대사인가?
산하의 어느 산님이 윤대장에게 붙여준 아름다운 명예 이름이 실감나는 사례를 체험한다. 산을 내려 오는데 삼각봉 근처에서 길을 묻는 한 산행 팀을 만난다. 윤대장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는 것을 뒤로 하고 우린 산 능선길을 내린다. 한 참을 기다려도 윤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삼각봉 위로 구름만 휘감는다. 5분 아니 10분이나 흘렀을까? 그제서야 초행길 산객들에게 길안내를 친절하게 해주고 속보로 달려오고 있다.
위/초행길 산님들에게 설명해 주는 윤대장님
억새밭을 지나면서 늦은 시각에 산을 오르는 산행팀을 또 만났다. 그 시각에 정상까지 갔다 오기에는 너무 무리란 생각이 든다. 윤대장은 친절한 설명과 응대로 우리 일행과는 상당한 거리가 또 벌어졌다. 우린 이미 길 흔적이 희미한 숲 속 계곡 길을 들어선지가 이미 오래된 후 그는 길을 잘 못 들었다고 하나, 이미 한 참을 내려왔던 터라 계곡길을 계속 탄다.
# "우와~ 등룡폭포닷"
계곡 너덜길을 헤치고 벗어나니 임도와 만난 길가 계곡엔 우렁찬 폭포 물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무명폭포에서 잠깐 심신을 씻는다. 시원한 물줄기와 폭포내림 물소리는 1000년 전 궁예의 망국의 한을 담은 울움소리도 묻은 채 물꽃 병정놀이를 하고 있다.
*무명폭포
무명폭포를 지나 한참을 내려오니 2단폭의 쌍용폭포인 등룡폭포를 만난다. 디카를 들여대는 일행들의 손이 분주하다. 아름다운 폭포에 취해 자리를 뜰 줄을 모른다.
한 참후에 다시 발걸음을 떼니 날머리 다 와서 또 비선폭포가 발길을 붙든다.
# 산행을 마치며
예정했던 산행시간을 훨씬 넘겼다. 폭포의 비경에 빠져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을 몰랐다. 태봉국의 궁예가 충분히 은거했을 만한 이유가 있는 산이라고 생각하며 산길을 내려선다. 일행은 동두천 시내에 있는 청주집에 들러 거나하게 하산주를 들고, 플랫폼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하는 사랑하는 부부가 흔들어대는 손을 뒤로한 채 경원선 21:00 열차에 몸을 싣는다. (2005.07.31)
*산행길에서 만난 친구들
- 부부홈 부부홈 chungjc33@ Y 2005.08.01 00:01:27
덕분에 즐거운 산행을 하였습니다.
또한 제홈에도 올려주어 감사하고요... (((^*^))) - 천지현황 천지현황 http://blog.daum.net/yoomfa Y 2005.08.01 10:31:36
다녀 가셨군요.
함께한 산행 즐거웠고, 걸판진 하산주 곁들인 저녁식사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 tdcyoun
tdcyoun http://blog.daum.net/tdcyoun Y 2005.08.01 10:45:30
선배님의 화려한 경륜으로 명성산 산행 즐거웠습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산행기 즐감했습니다
다음 만남의 그날을 기다리며 선배님을 회상하렵니다
산행길 수고많으셨습니다. - 천지현황 천지현황 http://blog.daum.net/yoomfa Y 2005.08.01 13:24:31
하~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또 보고싶고...
무더운 여름날 함께한 명성산 산행 고이 가슴에 간직하렵니다.
또 만날 때를 고대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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