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推敲)의 유래에 대한 소고(小考)
하병두 님의 <글쓰기 열두마당>에서 그리고 최인호 님의 <유림>을 읽다가 퇴고의 유래에 얽힌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에 그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당나라 스님 가도(賈島)가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 이웅(李凝)집을 늙은 말을 타고 찾아간다. 그런데 시상이 떠 올라 시 한 수를 짓는다.
閑居隣竝少 (한가롭게 사니 이웃이 드물고)
草徑入荒園 (풀밭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내닫네)
鳥宿池邊樹 (새는 연못가 나무위에서 졸고)
여기까지 쓴 가도 스님은 마지막 구를 짓는데 고민에 빠진다. 다음 구를 僧推月下門 (중은 달빛 아래 문을 밀치네)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僧敲月下門(중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으로 할 것인지 숙고한다. 밀 퇴(推)와 두드릴 고(敲)중 어느 표현이 어울릴까 고민하며 길을 가던 중 어느 고관의 행차와 맞닥뜨린다. 유명한 문인이기도 했던 한퇴지(한유)의 행차였다. 옛날엔 고관의 행차시엔 즉시 길을 비켜서고 부복하는 것이 법도인데 골똘하게 시구를 어느 것으로 할까를 생각하다가 그만 무례하게 길을 막아 선 꼴이 되었다. 불경죄를 지은 자가 가도 스님인 것을 안 한유는 스님을 불러 길을 막은 이유를 물었다. 대답인 즉슨 시구 중에서 밀'퇴'자와 두드릴'고'자 중에서 어느 것이 좋은지 고민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가 그 얘길 듣더니 후자의 두드릴'고'자를 쓰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준다.
그 이후로 문학 작품에서 자구를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했다는 말이 유래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퇴고의 유래와는 달리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스님이 친구의 집을 찾아 가면서 시를 지었다면 당연히 마지막 구를 두드릴'고"를 써서 僧敲月下門 이라고 하는 것이 더 운치가 있을 것 같고, 스님이 친구집을 찾아 갔으나 친구가 출타 중이어서 달빛만 구경하고 절집으로 돌아와 허퉁한 모습으로 절 방문을 들어 섰다면 밀 '퇴'를 써서 僧推月下門 이라고 쓰는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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