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탈출의 기쁨을 안고 동유럽 여행길로 (2007.07.26-08.02)
동유럽 여행길에 오르던 날 아침, 집으로 배달 된 조간 신문에 헝가리,루마니아, 이탈리아 등 남동 유럽 국가들에서 지난 2주간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살인더위가 계속되어 헝가리에서는 지난 일주일 동안에 무려 500 여명이 폭염으로 인해 심장질환을 일으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났다. 하필이면 여행 떠나는 날 이런 보도를 접하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그러나 일상에서 지친 마음과 몸을 잠시 쉬고 탈출의 맛을 보러 동유럽 여행길에 오르니 그리 걱정스런 마음도 벌써 사라졌다. 약간의 더위가 조금은 짜증스럽지만 마음만은 벌써 프라하의 하늘과 맞닿아 있다. 북새통을 이루는 인천 공항은 마치 시장통같다. 그래도 여행객의 얼굴엔 너나 할 것 없이 들떠 있는 표정들이다. 삼삼오오 짝지어 모여드는 여행객들의 모습에서 이탈의 모습을 본다.
국적기를 타지 않고 러시아 항공을 이용하여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프라하로 가는 기내엔 한국 관광객으로 만원이다. 가족끼리 동떨어진 좌석들을 바꾸느라고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난 후에도 기내가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나도 아내와 떨어진 좌석을 동행인이 바꾸어 주어 곁에 나란이 앉았다. 언젠가 비행기 추락사고가 난 직후 여행길에서 외국인 탑승객들은 좀체로 좌석을 바꾸어 주지 않는 모습을 보아 온 터라 간혹 보이는 외국인의 눈에는 희안한 광경이었으리라 싶다.
인천 공항을 이륙한 SU 600기엔 무뚝뚝한 사오십대의 여자 러시아 승무원이 주스 한 잔을 건네준다. 기내식을 돌리면서 "삐뿌 오어 삐씨?"하고 묻는다. 아마 "Beef or Fish?"의 발음이 러시아 여인의 강한 엑쎄트에 실려 전해 온다. 나중에 알았지만 모스크바 공항에서 대기 하면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그네들이 영어를 거의 못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공항 카페에서 생맥주 한 잔을 시키고 또 한 잔을 시켰는데 "오키"하면서 간 아줌마가 함흥차사다. 옆 좌석에서 음식을 들던 우루무치 남자가 영어로 나에게 그녀가 영어를 몰라 주문이 안되었을거라고 귀뜸해주며 자기가 불러 러시아 말로 다시 주문해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번 여행 길에선 각 나라의 술 맛을 좀 보려고 소주를 여행가방 목록에서 아예 빼 버렸다. 국적기를 타면 보통 와인이나 맥주는 무료로 서어비스를 하는 데 러시아 항공에선 사 마셔야 한다. 네데란드 산 '글로쉬' 캔 맥주 한 캔을 3 유로에 사서 마시니 여행길의 첫 술 맛을 본 셈이다. 우리나라 '카스' 맛 보다 좀 더 진한 쓴 맛이 입가에 남는다.
모스크바까진 대충 9시간 정도 걸린다. 에어 포켓을 자주 만나 동체가 심하게 요동을 몇 번 치자 모그크바 도착 한 시간 전쯤 아내는 결국 멀미를 하고 만다. 두번째 기내식을 먹은지 30여분 쯤 지났는데 어쩌면 그것에 체했는지 괴로와한다. 8시간을 꼼짝 않고 좁은 기내 좌석에서 앉아 온 탓에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이지상 지음 '여행가'라는 여행 수기를 한 권 읽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고 나니 우리나라와 다섯 시간의 시차를 가진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공항 근처의 비행기 창가에서 내려다 본 산야의 모습과 주택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시야에 들어 온다.
여행에서 꿈을 다시 꾸고 싶은가. 정리되지 않은 삶과 생각들을 다시 정리하고 싶은가. 아니면 살아 온 삶을 다시 되돌아 보고 싶은가.지금 바로 떠나자,그 여행길로. (2007.07.26)
모스크바 상공에서 바라 본 공항 주변
기내에서 마신 네델란드 산 캔 맥주
모스크바 발 프라하행 SU143기
서울에서 타고 온 SU600 러시아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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