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여행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영혼들---(3)

천지현황1 2007. 8. 4. 08:51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힌 영혼들

 

 프라하 관광을 마치고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관광하기 위해서 브르노로 이동하는 길은 버스로 3시간을 달린다.드넓은 벌판을 달리다 보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해바라기 밭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옥수수 밭,밀밭이 가뭄에 탄듯 즐비하게 너브러져 있는 평원이 펼쳐진다.원래 동유럽 여러나라를 여행하는 패키지 투어는 코우치 투어이기 때문에 하루에 서너 시간은 차를 타고 이동하며 국경을 넘는다. 차창으로 비추는 이국의 풍경은 감미롭다. 넓은 평원은 숲과 나지막한 언덕으로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한가로운 풍경은 마음까지도 여유롭다.

 

 브루노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캔 맥주 두캔을 사들고 버스에 오른다. 스치는 풍경을 놓칠세라 두 눈을 창 밖에 응시하다가 이틀간 강행군 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잠깐 10여 분 단잠에 빠져들었다.내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광을 위해 이해를 돕고자 투어 리더가 준비한 비데오 테잎으로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감상한다.이 영화 촬영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한 눈은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두고 한 눈은 비데오 감상에 열중한다.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히틀러가 패망하고 해방이 선포되자 살아 남은 포로들이  풀려나며 한 마디 내 뱉는 말, "Where do I go?"대사가 잔잔하게 뇌리에 잔영처럼 남는다.

 

 브루노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뒤 호텔 뒷 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3인조 실버 악단의 연주 속에 저녁 만찬을 즐긴다. 여러 곡을 연주하고 끝에 우리 아리랑을 연주하자 포크를 쥐고 있던 손을 놓고 아내와  동행했던 박선생이 뛰어나가 둥실둥실 우리가락에 맞춰 춤을추며 흥을 돕는다. 

 

 어젯밤 마신 보드카 탓에 단잠을 잤다.호텔에서 조식을 마친 후 우린 다시 폴란드 크라카우로 이동한다.체코 국경을 넘자 폴란드의 산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국경 초소 하나를 경계로 약간 다른 분위기의 들과 집들이 나타난다. 폴란드는 외세의 개입이 가장 많았던 나라로 전쟁을 많이 치른 탓인지 이웃하는 국가들보다 조금은 불행한 나라임에 틀림없다.면적은 우리나라의 1.5배 정도이나 들보다는 산이 많아 우리나라 농촌을 연상시켰다.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폴란드 태생의 기사에게 이것저것 몇 마디 묻는 얘기 속에 '폴란드는 일자리가 부족하여 이웃 나라인 독일,이탈리아 등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나간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시 버스는 크라카우로 가는 길에 추월하다 폴란드 순찰차의 함정 단속에 걸려 60유로의 페날티 티켓을 발부 받니라고 10여분 노상에서 쉰다. 운전 기사 미스터 뮐러가 폴란드인이기 때문에 또 관광버스임으로 봐 줄 줄 알았는데 교통법규 앞에선 냉정한 그네들의 모습에서 준법정신의 모습을 본다.우리가 10여분 쉬고 있는 사이에 같은 장소에서 네 대의 또 다른 차들이 단속에 걸리는 모습을 보고 이네들도 우리나라 경찰들처럼 이곳이 함정 단속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달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섰다. 어제 영화에서 본 수용소 건물들이 빨간 벽돌집으로 을씨년스럽게 서서 관광객을 맞이한다.우리가 방문한 수용소는 제1수용소로서 2만평의 부지에 28동의수용실과 가스실 1동이 있었다.화장장도 있고 단두대도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새삼 히틀러가 미워졌다.수용소 정문에 역설적인 문구,'자유롭게 노동하라'라는 캐치 프레이즈 문구가 걸려 있어 아이러니하다.

 

 53만평의 제2수용소가 300여개의 수용동을 가지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고 제3수용소도 지도에 보니 이곳에서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이 수용소에서 100만에서 혹자는 450만명이 처형됐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자신이 읽은 루돌프 자서전에 의하면 적어도 유태인 110만명을 포함하여 250만명이 처형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이들 중 70~80%가 가스로 처형했다는 끔찍한 얘기를 듣고 히틀러의 몹쓸 만행에 분노의 마음이 피어 올랐다.

 

 수용실은 지금은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그 기록물들의 전시실로 활용하고 있다.어느 방엔 희생자들의 머리카락이 가스처형으로 회색으로 변색된 채 7톤 이나 전시되어 있고 장애우들의 의족,의수,안경 등이 쌓여 있다. 어느 방엔 희생자들의 신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게중에는 어린아이의 신발도 눈에 많이 띄어 가슴이 찡한채 숙연한 마음을 안고 둘러보았다.어린 아이들의 신발 전시장 앞엔 시든 꽃 한송이가 처연하게 목을 놓고 울고 있다.이웃나라에서 모아 온 유태인들을 즉결 처형하고 건장한 남자는 노동착취 현장에 투입했으나 그네들마져 평균 생존기간이 3~5개월이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어느 수용동 벽면에 동판으로 '역사를 잊은 사람들에게 다시 그 현장을 통하여 그 역사를 잊지 말고 살아가자'고 당부하는 글귀가 눈에 띈다. 

 

 세계역사는 꼭 승자만이 쓰는 것이 아니다.히틀러는 유태인에게 지독한 컴플렉스를 가진자였다. 그는 젊었을 때 미술대학에 지원했으나 실패후 유태인 심사원때문에 자신이 합격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유태인들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학살했다는 설도 있고 그의 여자 친구가 유태인이었으나 발로 채였다는 설도 있다. 여하튼 그는 분명 인류사에 두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정신지체자임에 틀림없다. 수용소를 둘러보고 문을 나서는 나는 뒷 맛이 개운치 않아 한 참을 두리번거리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해 본다. (2007.07.28)

 

 아내(오른 쪽)는 지금 우리 아리랑에 흥겨워 춤사위를

 

 

 

 

 서 있는 사람이 잘 생긴 폴란드 태생의 버스기사 미스터 뮐러, 순찰차에서 페널티 티켓을 발부받는 장면

 

 

* 아래 사진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 실내는 사진촬영 금지구역

 

 

 

 

 

수용소에 왠 오케스트라?------------이 사진은 당시 수용소 포로들이 일을 마치고 들어 올때 음악을 들려주면 줄을 맞추고 통제하기 쉽다나. 간교한 히틀러의 발상이 얄밉다

 

 

 

 

 

 단두대/아이러니하게도 이 수용소 소장도 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나. 사실 확인이 안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