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과 인도네시아 한 달 살기

족자여행 2일차 오전 / 머라피 화산,160105

천지현황1 2016. 1. 22. 11:06

족자여행 2일차 오전 / 머라피 화산,160105

오늘 하루는 오전엔 머라피 화산 (Taman National Gunung Merapi),오후엔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Taman Wista Candi Borobudur) 사원을 다녀 올 계획을 세웠다.자카르타에서 미스터 신의 도움을 받아 승용차 한 대를 하루 사용료로 450,000 R/P (기사포함,통행료 불포함)에 렌탈 예약을 했다.건건이 택시를 이용하는 것보다 하루 렌탈료가 훨씬 저렴하다.호텔 정문에 08:30분에 대기하기로 했다.약속시각보다 5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예약한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헬로우....","예써,..지금 주차장에 왔있습니다. 곧 정문으로 가지요".유창한 영어를 쓰는 기사다.반가웠다.어제 호되게 속사포로 현지어를 쏘아부치는 공항택시 기사와 비교되어 안도의 숨을 쉰다.반갑다는 인사교환이 끝나자,오늘 여행지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잘 모시겠다는 말과 함께 우린 머라피 산을 향해 떠난다.호텔에서 30 여 km로 약 한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란다.


머라피 가는 길은 도심을 벗어나자 좁은 시골 길이다.가는 길 내내 족자카르타의 역사며 문화,화산활동에 대해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그는 족자에서 태어나 족자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족자 토박이인 셈이다.요즘 영어회화공부를 하는 아내도 토막영어로 우리 대화에 한번씩 끼어든다.지루함도 없이 오전 일찍 머라피 관광 베이스캠프에 도착한다.아래 그림처럼 세 코스가 있다.미디엄코스를 택할려고 하니 아내가 물에 젖는 것이 싫다고 하여 짧은 코스를 택했다.한 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 찝차 이용료가 350,000 R/P다.머라피산(Gunung Merapi)정상으로부터  6 km,7 km,4 km 세 곳을 방문하는 코스다.


낡은 찝차를 탄다.시동을 몇 번 걸고서야 '부르릉~'소리를 내며 시동이 걸린다.다행히 젊은 찝차 운전수도 영어를 구사한다.가면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한다.산 길에 들어서자 길이 움푹음푹 패어 우리 상식으론 도저히 운전 할 수 없는 최악의 도로상태다.운전석 조수석에 아내를 앉히고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안전띠도 없다.온 힘을 다 주어 차 안 지지대를 꽉 잡고 사방을 두리번거려야 했다.숲 속에 이따금 농가 한 채씩 나타난다.화산 아래 살며 숲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이다.그들의 삶이 얼마나 황폐할까를 생각하니 맘이 아팠다.이런 생각은 제1사이트에 도착하고는 더 굳어졌다.


제1사이트는 뮤지엄이다.이 곳에선 박물관을 뜻한다.지금부터 5년 전 머라피 화산이 폭발하여 6km떨어진 이곳 주민이 입은 피해를 고스란이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그 날의 실상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악몽이었을 것 같다.녹아내린 T.V와 세간살이,멈추어 버린 시계,외양간에 있던 가축 모두 비극이었다.그 날의 참상이 상상으로 그려졌다.이틀동안 분출되었다는 설명이다.300 여명의 주민이 죽었다는 말엔 숙연해졌다.


다시 제2사이트로 좁은 숲 길을 간다.길이 제1사이트 가던 길보다는 양호하다.간간이 숲 속에서 사는 주민의 집이 눈에 띈다.도대체 이들은 5년전 화산폭발을 경험하고도 터전을 떠나지 못하고 이 산에 기대어 사는가.무엇이 그들을 이곳에 머물게 하는지 궁금했다.기사에게 물었다.한 참을 머뭇거리더니,글쎄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삶의 터전이라 쉽게 떠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대답이다.그들은 화전을 일구며 작은 땅덩이를 일구며 산다.어디메쯤 가다가 주민 한 사람이 자기 집으로 부터 조금 떨어진 길가에서 땅을 사방 1m정도를 깊이 1m쯤 파고 있었다.뭐 하는 거냐고 기사에게 물었다.화산재를 파고 있다는 얘기였다.나중 렌탈 승용차기사에게 물으니 화산재는 콩크리트를 만드는 흙으로 배합하는데 사용되는 최고의 자재라고 설명한다.그러고보니 화산재를 가득 싣고 가는 트럭이 옆을 스쳐간다.이들에게 삶이란 무었인가? 정답도 없는 물음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제2사이트는 화산으로부터 7km쯤 떨어진 곳이다.큰 바위얼굴을 닮은 큰 바위가 이곳까지 굴러와 있었다.기사가 이곳은 큰바위 얼굴의 눈,코라며 짚어가며 설명하는데 어쩐지 설명듣기가 짠하다.억지로 상상으로 만난 큰바위얼굴이다.우리가 첫 관람객이었는데 많은 관람객들이 제2사이트로 몰려들었다.관람객의 대다수는 현지 젊은이들이다.외국인은 우리 부부 뿐인 듯 하다.


제3사이트는 화산 분출구에서 4km 밖에 안되는 곳에 있다.그곳엔 벙커 하나가 보존되어 있다.사연인즉,폭발 당시 인근 주민 두 사람이 이 벙커에 피신하여 목숨을 건진 곳이라는 설명이다.지금은 콘크리트로 내부를 단장해 놓고 철문을 달아놓았다.기사 설명으론 40명쯤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덧붙인다.언덕에 올라 머라피산을 바라본다.구름에 잠겨 희미하다.아니 구름 속에 아예 파묻혀 문을 열지 않는다.갑자기 어두어진 산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를 퍼붓기 시작한다.찝차 기사는 얼른 찝차 천막을 치기 시작한다.다행히 우린 비 내리는 머라피화산을 사고 없이 내린다.베이스캠프에서 다시 차를 바꿔 타고 불교사원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떠났다.  


 







머라피 화산투어 찝차 예약지 (사진 왼쪽 뚱뚱한 사람이 렌탈한 자동차의 기사)





제1사이트 / 머라피산 정상으로부터 6 km 지점





기념품가게에 걸려 있는 사진 한 장,2010년11월5일 머라피화산 폭발장면과 산 아래풍경사진




제1사이트 / 실제 당시 피해 가옥과 기념품가게가 있다




























제2사이트 / 화산으로부터 7km떨어진 곳












다시 제3사이트로 / 화산으로부터 4km떨어진 지점


















용과나무

 

 



보로부드루 사원 가는 길에 만난 꽃



살락 산지에서 기사가 사준 뱀껍질 같은 과일, 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