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바람따라

-조선후기 그림들과 국보 제2호를 만난 날 (인사동/탑골공원)

천지현황1 2005. 7. 28. 12:37
 

                            -조선후기 그림들과 국보 제2호를 만난 날


 수 영취산에 진달래 꽃불이 났다며 산행인들이 디카로 담아 온 사진을 보니 금방이라도 산으로 달려가고 싶다. 왜 나이 들어가며 더욱 우리 산하(山河)가 아름답고 꽃이 아름다운지 요즘 시집갈 처녀마냥 내 마음도 들떠 있다. 며칠 전에는 올림픽공원에 가서 봄을 붙들어 맬 요량으로 화사한 벚꽃, 백목련과 자목련 그리고 명자나무꽃 등을 디카에 담아 왔다. 어제 오후엔 아내와 팔당 호수를 내려다보는 분원의 금봉산 자락에서 생강나무 꽃과 진달래꽃 향을 맡으며 쑥을 캤다. 석양의 팔당 호수는 은빛을 쏟아내고 연분홍 진달래는 맑고 훈훈한 바람에 너울댄다. 진한 쑥 향을 맡으며 저녁 식탁에 오를 쑥국을 생각하니 캐는 손길이 분주하다. 열심히 캔다고 캤는데 내 수확물은 아내 것의 반 밖에 안 된다. 쑥과 함께 산자락에 난 씀바귀도 한 소쿠리나 캤다. 냉동실에 보관하면 아마 한 달 정도는 식탁에서 봄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듯싶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3년 전 전원생활 연습한답시고 이곳 분원에서 1년여 동안 생활했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그리워진다.


 즘 주말마다 만사 제치고 산을 오르는 게 일상생활이 됐다. 오늘 일요일엔 양주에 있는 불곡산(佛谷山)을 갈 예정으로 배낭을 꾸릴까 하다가 온 몸이 뻐근해 계획을 바꾼다. 아마 어제 장시간 쪼그리고 앉아 쑥을 캐서 그런 것 같다. 계획을 바꿔 서울 한 복판, 인사동 ‘학고재’로 발길을 돌린다. 4월 6일부터 20일까지 그곳에선 ‘조선후기 그림의 기(氣)와 세(勢)’라는 제목으로 조선후기 걸작전을 연다. 경복궁 앞길을 걸으며 한적한 서울 도심을 느낀다. 모두들 산으로 꽃구경 갔는지 아니면 여의도 벚꽃 축제에 갔는지 차량 통행도 뜸하다. 전시실에 들르니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가 화가의 기운이 내공으로 뭉친 듯 시원한 물줄기를 높다란 절벽에서 품어대고, 능호관 이인상의 ‘장백산도’는 천지연 둘레 장백산의 위용을 간결한 붓 터치로 여백의 미를 담은 채 시선을 잡아끈다. 특히 능호관의 문인화는 격조가 높다. 전시실 안쪽에 들어서니 화가라기 보다는 차라리 기인으로 살았던 호생관 최북의 ‘공산무인도’가 내 발걸음을 장승처럼 붙들어맨다. 어렴풋이 보이는 빈산과 그 아래 정자엔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계곡의 물은 아무 말 없이 유유히 흐르고 정자 옆엔 꽃이 핀 나무가 서 있다. 그리고 여백엔 그리 잘 쓰진 않았으나 당당하게 공산무인수류화개(空山無人水流花開)라는 화제가 더욱 강렬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선시대의 그림들을 복사본으로 만 보아 오다가 이렇게 간혹 진품 그림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된다. 언젠가 완당의 ‘세한도’를 보았을 때 느낀 그 묘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내 일생에 두 번 다시 그 진품 세한도를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이 또 올까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겸재의 그림들이나 단원 김홍도, 오원 장승업, 현재 심사정, 호생관 최북의 그림들 모두 마찬가지다. 다행히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에서 1년에 봄 가을 2주간씩 여는 전시회에 목을 맬 뿐이다. 조선시대 옛 그림의 정취에 흠뻑 젖은 발길을 인사동 골목으로 돌린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사람 사는 거리 같다. 골동품이며 관광상품이며 골목을 꽉 매운 인파며 볼거리가 많다. 여기 저기 외국인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띈다. 한국을 관광하는 외국인들이 들리는 명소 중 하나가 인사동과 이태원이다.


 람 꽃길을 걷다보니 시장기가 들어 아내와 인사동거리에 있는 고궁 음식점에 들러 전통전주비빔밥에 모주 한잔을 곁들인다. 오늘은 참으로 놀랠만한 사건이 하나 벌어졌다. 식사 때마다 반주를 즐기는 나를 아내는 그리 좋지 않게 생각하며 싫은 눈길을 보낸다. 아내와 함께 외식할 때 마다 어김없이 소주 한 병을 시켜 반주를 하니 내가 생각해도 아내 마음을 이해 할 것 같다. 아내는 전혀 술을 못 하니 술 차지가 전부 내차지가 된다. 그렇다고 반병을 주문 할 수도 없고, 술꾼이 술을 남기고 자리를 뜰 수도 없고 그저 난감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메뉴판을 보더니 얼른 모주 한잔을 시킨다. 메뉴판에 잔술도 판다고 적혀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소주 한 병을 시킬까봐 선수를 친 것인지, 하여튼 세상 살며 별 일을 다 본 셈이다. 아내가 먼저 내 반주를 다 시켜 주다니! 목을 넘기는 술 맛이 왜 이렇게도 술술 넘어가는지. 식사 후 인사동 거리를 걸으며 여러 풍물들을 구경한다. 사람들의 어깨를 치며 걷는 발걸음인데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다. 종로 3가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탑골 공원 앞을 지난다. 서울 살면서 그냥 지나치기만 했을 뿐 한번도 그 공원에 들르지 않았다. 3.1운동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그 공원은 이젠 노인들의 쉼터 정도로만 생각해 왔던 나의 선입견 때문이었다. 아내도 한번도 관람해 보지 않았단다. 우리는 생각을 바꿔 공원에 입장했다.


 ~나의 무지의 소치가 탄로 나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탑골공원은 고려시대 흥복사터로 조선시대 세조 11년에 다시 원각사란 절로 중건된다. 그러나 연산군에 의해 폐사되고 빈터로 내려오다 다시 1897년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파고다공원’으로 명명되다가 1992년 탑골공원으로 개칭되었다. 그런데 이 공원에는 우리나라 국보 제2호인 원각사지 10층탑이 유리집 속에 보존되어 있는데 그 모습이 내가 지금껏 보아온 석탑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모습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그 탑은 대리석으로 만든 것으로 조선 세조 13년 (1467년)에 건립되었으며 탑 높이는 12m이고 3층 기단 위에 10층 탑신이 올려져 있다. 각 층에 불회도상, 인왕상, 불좌상과 화초, 동물들의 여러 모양들을 양각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돌아오는 지하철 속에서 다시 한번 나의 무지를 탓하며 산행에만 몰입하지 말고 틈틈이 서울 시내와 근교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적들을 살펴봐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조선 후기의 그림 진품들을 만나고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만난 오늘 하루가 어찌나 행복한지 마음이 뿌듯하기만 하다. (200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