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필(落筆)

-절망을 일컬어 죽음보다 더 깊은 잠이라 했던가 / 김소진 유작 산문집, <..

천지현황1 2005. 12. 21. 10:57

 

                           -절망을 일컬어 죽음보다 더 깊은 잠이라 했던가

                            김소진 유작 산문집, <아버지의 미소>를 읽고

 

 망을 일컬어 죽음보다 더 깊은 잠이라 했던가. 1997년 4월 서른 다섯의 나이에 그는 삶을 버렸다. 너무나 빠른 나이다. 홀연히 작품 몇 점을 남기고 그의 아내 함정임 작가 곁을 떠났다.

 

 1991년 그는 그의 아내보다 1년쯤 늦게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쥐잡기>로 등단한다. <장석조네 사람들>,<양파>,<동물원>등의 장편소설과 창작동화 <열한살의 푸른바다>등을 썼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들을 대한 적이 없다. 그래서 작가 이름도 생소하다.

 

 의 유작 산문집은 그의 아내가 1주기 추모의 념으로 책으로 엮었다. 1984년 대학시절부터 작고 직전 까지의 글들이다. 옹골지고 당차다. 가난과 빈궁으로 살아온 유년시절의 달동네 가족사는 슬프다. 한 작가의 불우한 시절을 뛰어넘어 독자가 그의 생활상을 엿보기가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든다. 그렇게 빈곤하게 살아보지 않은 독자들의 부채의식때문이리라.

 

 삶의 진물이 흥건하게 고인 상처가  글 곳곳에 베어있다. 그러나 그는 가식없고 부끄럼도 없다. 오직 하나하나 진솔한 속내를 들춰낸다. 그의 이런 용기가 가상하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라면 어떻게 썼을까? 과연 상처투성이의 자신의 가족사며 궁핍을 가식없이 적나라하게 들춰낼 수 있을까?  글을 읽으며 몇 번을 곱씹어본 화두다.

 

 가는 자신의 어두운 삶을 기술했다. 그러나  결코 어둡지 않다. 순진무구한 정직성이 돋보인다. 작가는 말한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외로움에 사무쳐 그것과 싸우다 떠난 사람이다"고. 6.25전쟁이 아버지의 삶을 바꾼다. 함경도 고향땅에서 오손도손 살던 처자식을 두고 홀홀 단신으로 남하한다. 재혼하여 어렵게 살아가는 달동네에서의 삶은 처절하다 못해 가련하다.

 

 작가가 어린시절을 그린다. 동네 양아치형들과 어울려 삶의 밑바닥을 경험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의 덕인지 몸뚱아리는 배고팠을 망정 머리 속은 여유로움과 지식으로 꽉 채운다. 그러나 어린시절 자신의 못난 아버지를 부정한다. 나이들어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작가 자신이 바로 그 아버지 자신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미소를 떠 올린다. 그 대목에서 세월이 주는 교훈과 한 시대의 아버지상을 그려본다.

 

 내 함정임 작가는 말한다. "김소진을 처음 만나던 날 그가 입고 온 셔츠와 운동화는 새 것이 아니었는데도 눈이 부시게 하얗고 정갈해 보였다"고. 또 "그에게선 싱그러운 비누 냄새가 났고, 그의 영혼도 틀림없이 그러할 것'이라고.  (2005.12.21)